신자경 <진심인 편>
- 누크갤러리
- 5일 전
- 3분 분량
최종 수정일: 3일 전
누크갤러리는 2025년 공예 전시로 진심을 다해 일상에서 사용하는 물건을 만드는 신자경의 <진심인 편>전을 개최한다. 많은 시간의 노동과 인내의 결과물로 기물을 만들어내는 작가는 입체적인 시선으로 사물을 바라보며, 일상적인 기물의 용도와 보편적인 기물의 크기와 형태에 의문을 가진다. 사물을 손 안에서 돌리며 3D 프로그램 상에서 기울이고 잡아당겨보면서 사물 형태의 가능성을 실험해보던 작가는 컵의 내면을 외부로 끄집어내는 시도를 해본다. 컵의 내면이 튕겨 오르는 듯 외부로 돌출한 형태는 컵 두개가 합쳐져 서로 기대어 의지하고 있는듯 정겹다. 손잡이가 사라진 스푼은 크기가 확대되고 테이블에서 미끄러지듯 들어올려져 신자경 특유의 간결한 형태를 가진 보울이 된다. 두개의 보울은 다른 각도로 결합되어 다양한 형태를 보여주기도 한다. 기물의 형태와 용도는 작가의 사물에 대한 의문에서 시작해 끊임없이 변화한다. 자신만의 조형언어를 가지고 최선의 완성도를 보여주는 신자경의 작품에서 공예가로서의 정신과 태도를 찾아볼 수 있다.

전시 안내
전시 제목: 진심인 편
전시기간: 2025년 4월 3일 – 4월 19일
참여작가: 신자경
전시 장소: 누크갤러리 서울시 종로구 평창 34 길 8-3
관람시간: 화~토: 11:00am~6:00pm *일, 월: 휴관
전시 문의: 02-732-7241 nookgallery1@gmail.com
<진심인 편>
신자경
*진심²(盡心)「명사」 마음을 다함.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어떤 것에 진심인 편’이라는 말은 어떤 분야에 특별히 진심을 다해 임하는 것을 이르는 유행어로 표준어는 아니지만 동시대의 대한민국에서 빈번하게 사용되고 있다. 누군가에게 내가 겪은 일련의 사건들을 이야기하다가 매사에 진심이라는 말을 들었다. 가벼운 대화였지만 그 진심이라는 단어는 나의 답답한 많은 고민에 대한 이유를 명쾌하게 언어화하며 속시원한 대답을 가져다 주었다.
매사 진심의 여부가 내가 느끼는 수많은 감정을, 여러 상황에 대한 대응과 판단 및 결정을 좌지우지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진심의 여부라는 것은 내가 업으로 삼고 있는 공예 작업과 많은 부분 닮아있는 것 같다. 사소한 것들을 고민하고, 얼핏 봐서 잘 보이지 않을지도 모르는 디테일을 위해 수시간을 투자하여 어떠한 것을 전심을 다해 공을 들여 만드는 공예적인 태도는 효율과 가성비를 중요시하는 우리 사회의 일반적인 논리와 참 대척점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인내의 과정을 거쳐 완성되는 것은 따뜻한 진심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삶에서 나름의 큰 변화를 겪은 뒤, 혹은 여전히 겪으며 만들어낸 작업을 선보인다. 삶의 터전이 바뀌고, 날마다 하는 주된 일의 성격이 변함에 따라 내가 겪는 여러 마음과 끊이지 않는 질문들은 무의식중에 작업의 영감이 되어 조형적 언어로 기록되어졌다. 내가 만들어내는 기물이 결국 나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작가 이력
신자경 Ja-Kyung Shin (b. 1981)
신자경은 일상적인 물건의 크기, 형태, 기능적 경계에 대해 탐구하며, 물건을 만들고 사용하는 손과 사물의 관계, 그리고 그 만남에서 발생하는 움직임의 형태에 주목한다. 이를 바탕으로 물건의 다양한 형태적 가능성을 모색하고 확장하는 작업을 지속하고 있다.
1981년 부산에서 태어난 그는 2004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디자인학부 공예과를 졸업한 후 2010년 독일 뉘른베르크 국립미술대학 금은공예과를 졸업했다(마에스터슐러린). 2004년 이후 네 차례의 개인전을 개최했으며, 100여 회의 국내외 기획·단체전에 초청받아 참여했다. 또한, 국제 공모전에서 다섯 차례 수상하고 13차례 입선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그의 작품은 영국 런던의 빅토리아 앨버트 박물관, 독일 하나우 금속공예박물관, 독일 라이프치히 그라씨공예박물관, 한국의 서울공예박물관, 푸른문화재단 등에 소장되어 있다. 현재 서울대학교에서 재직하며 작품 활동과 후학 양성에 힘쓰고 있다.
작품 이미지


어느날 우연히 발견한 유리컵의 두께에 의해 생겨나는 외곽선의 모양과 내곽선의 모양은 이중적이다. 이 둘은 닮아있지만 정확히 일치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아예 다르지도 않다. 이 이중성을 탈피하여 어떠한 다른 것이 되어보려는 몸부림은 내면을 과감히 꺼내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숟가락은 테이블 위에 납작하게 놓여졌다가 들어올려지고, 이 두 상태를 반복적으로 오가며 사용된다.


촛대라는 것은 어쩌면 굳이 존재하지 않아도 되기에 어떠한 조형적 타당성을 부여하는 것이 너무도 어려운 물건이다. 초는 굳이 촛대가 없더라도 촛농을 고정하려는 면적 위에 떨어뜨려 고정할 수도 있고, 종이컵 등을 사용하여 그냥 초를 손에 들고 있어도 되기 때문에 촛대라는 것은 장식성을 제외한다면 어떠한 형태로 존재해야하는지 잘 모르겠다. 생각할 수 있는 촛대의 최소한의 역할이란 초가 바닥에 붙어 있지 않고 허공에 고정될 수 있도록 잘 붙잡아주는 것, 화려한 식탁 장식을 위해 여러개의 초가 동시에 조형적으로 꽂힐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아닐까 싶다. 단순하고 간단한, 당연한 일일 수도 있지만 그것을 어떻게 만들어가느냐는 마음먹기에 달렸다.
두껍고 육중한 철이 꼬이고 꼬여 이루어내는 것은 결국 고작 두개의 초를 이어 고정해주는 일이다.